독서노트 19

2019. 10. 4 슬픔이여 안녕

나는 누구보다도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인 다음과 같은 간결한 표현을 곧잘 되풀이하곤 했다. '죄악이란 현대사회에서 존속되는 유일하게 살아 있는 색채의 주석이다.' 나는 이 말을 실행에 옮겼을 경우보다 더욱 확실하게 절대적인 확신을 갖고 내것으로 만들었다. 나는 내 인생이 이 문구를 흉내내고 여기서 영감을 얻어내며, 에피나르의 악덕한 이미지처럼 무엇이 솟아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침체한 시간이나 단절이나 일상적인 선한 감정들을 잊고 있었다. 이상적으로 나는 비열하고 파렴치한 삶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다른 것에 그러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찮은 일에도 집착하는 수가 있다. 그런데 안느는 나를 생각하는 사람으로는 보지 않았던 것이다. 갑자기 나는 그녀가 자기의 잘못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독서노트 2019.10.13

2019. 07. 10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그리하여 우리는 치명적인 쾌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피드'를 쾌락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처럼 추악한 시대에는 위험, 뜻밖의 사건, 무분별함이 숫자, 적자, 혹은 계산에 직면하여 끊임없이 거부당한다. 이 시대는 비참한 시대이다. 사람의 영혼에 깃든 계산할 수 없는 가치가 아니라, 사람의 몸뚱아리에 매겨진 가치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두발 짐승들은 그토록 사랑했던 생트로페에 대해 지금은 아주 나쁘게 말한다. 혹은 마술사가 모자에서 토끼들을 끄집어내듯 그댈의 기억으로부터 '그들의 것'이었던 청춘의 찬란하고 향수 어린 추억을 끄집어낸다. 그들은 그 추억을 그들 뒤 세대의 추억과 비교할 때 눈에 띄게 색다르고 우월하다고 평가한다. ..

독서노트 2019.08.09

2019. 06. 21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는 이가 있다면..., 사실 그게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닌데. 그 후 몇 달 동안 나는 사방에서 부딪혔다. 마음 둘 곳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데나 툭툭 부딪혔다. 아프면 아플수록. 나는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즉 열심히 살아가는 척 스스로를 속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침이면 일어나 머리가 멍해질 때까지 일을 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잘 먹고 때로는 동료들과 맥주도 마시고 가끔은 형들과 호탕하게 웃어젖히기도 했지만, 그 시절 만약 누군가 내 비위를 조금만 건드렸어도 나는 그대로 폭발하고 말았을 것이다. 오늘 그녀가 우는 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런저런 이유들 때문이다. 삶이 그녀에게 덤벼들고 있다.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속을 후련하게 풀어내기 위해서 이..

독서노트 2019.07.03

2019. 05. 22 오후의 기타

나의 정부, 나의 기타 그리운 악마 - 이수익 숨겨 둔 정부 하나 있으면 좋겠다. 몰래 나 홀로 찾아드는 외진 골목길 끝, 그 집 불 밝은 창문 그리고 우리 둘 사이 숨 막히는 암호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아무도 눈치 못 챌 비밀 사랑, 둘만이 나눠 마시는 죄의 달디단 축배 끝에 싱그러운 젊은 심장의 피가 뛴다면! 찾아가는 발길의 고통스런 기쁨이 만나면 곧 헤어져야 할 아픔으로 끝내 우리 침묵해야 할지라도, 숨겨 둔 정부 하나 있으면 좋겠다. 머언 기다림이 하루 종일 전류처럼 흘러 끝없이 나를 충전시키는 여자, 그 악마 같은 여자. 시인이 대놓고 불륜을 조장할 리는 없다. 그러면 이 시의 '정부'가 은유하는 상징은 뭘까. "마음 설레게 하고 심장의 피를 뛰게 하는 이 세상의 온갖 매혹적 존재들"이라고 평..

독서노트 2019.06.06

2018. 3. 12 무심코 당신을 부르다가

무심코 당신을 부르다가, 시로야마 사부로 そうか、もう君はいないのか, 城山三郎, 2008(그런가, 더는 너는 없는것인가) 한국어판 제목이 원제와 사뭇 다르다.라는 제목이 애틋해서 빌린 책이다.이 책은 2007년 세상을 떠난 작가의 둘째 딸이 원고를 모아 낸, 작가보다 일찍 세상을 뜬 아내와의 삶을 적어내린 이야기다. 원제는 작가가 이제 없는 아내를 부르다가 이내 곁에 없음을 알 때의 탄식이다. 그러고 보면, 무심코 당신을 부르다가 더는 없음을 알게되는 것이니 사뭇 다르지 아니한 지도 모르겠다.어느 쪽이건, 애틋한 건 매한가지이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요정. 책을 좋아하는가 싶었지만 사실 땡땡이를 친 고등학생이었던 아내. 만남을 시작했던 둘은 아내 요코의 아버지의 반대로 한동안 절교상태로 놓였으나,수 년..

독서노트 2018.03.16

2018. 2. 25 세상의 모든 아침

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Tous les matins du monde, Parcal Guignard, 1991 자네는 춤추는 사람들이 춤추게 도와줄 수는 있네. 무대에서 노래하는 배우들의 반주는 할 수 있겠지. 자네 벌이는 할 걸세. 음악에 둘러싸여 있겠지만, 그러나 음악가는 아니네.느끼는 심장이 있는가? 생각하는 뇌가 있는가? 춤을 추게 하기 위한 것도, 왕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한 것도 아닐 때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는지 아는가?그런데 자네의 망가진 목소리가 나를 감동시켰네. 자네 고통 때문에 받아들였지, 자네 기교 때문이 아닐세. 생트 콜롱브 씨가 불쑥 제자의 팔을 붙잡아 세웠다. 그들 앞에 한 소년이 바지춤을 내리고 눈 속에 구멍을 내며 오줌을 누고 있었다. 눈 속에 구멍을 뚫는 뜨거운 오줌..

독서노트 2018.03.16

2018. 1. 30 인간의 조건

인간의 조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아포리즘, 에릭 호퍼 Reflections on the human condition, Eric Hoffer, 2006 오해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낸 후 그것이 맘에 들지 않을 때 비롯된다는 설명은 정곡을 찌르는 것이다. 인내는 성장의 부산물이다. 우리는 성장하고 있을 때 기회를 기다릴 수 있다. 권력과 명성을 획득하거나 추구할 때는 인내심이 존재하지 않는다.성장의 대체물을 추구할 때 우리는 가장 조급해진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노력도 없이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이들은 자기의 실패를 노력 부족보다도 영감이나 능력 부족,또는 불운 탓으로 돌린다. 진정한 재능이 있는 자는 누구나, 성취하기 위해서는그 고유의 어려움..

독서노트 2018.03.16

2018. 2. 21 항상 나를 가로막는 나에게

성공의 원인, 실패의 원인 어떤 경험도 그 자체로 성공의 원인이 되거나실패의 원인이 되거나 하지는 않는다.고통스러운 경험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힘들어하는 사람이 자신의 경험에서 쓸만한 고통의 기억을 재구성해내는 것이다.현재 상황이 즐겁고 잘 되고 있다면기억하지 않았을 일일 수도 있다.이처럼 자신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의미는 상황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상황에 이름을 붙이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가장 쉬운 해결책 꿈은 모든 문제의 가장 쉬운 해결책이다.낮의 문제를 밤으로 가지고 가는 것,그것이 꿈이다. 투쟁은 쉽다 자신의 원칙과 신념을 위해 싸우는 것이,그 원칙과 신념대로 살아가는 것보다 쉽다. 삶의 두 가지 기준가슴이 이끄는 대로 가되,뇌를 항상 챙겨 가라. - 알..

독서노트 2018.03.12

2018. 1. 29 One mile closer, James Hooper

오랜만에 남산도서관과 용산도서관을 들러 욕심껏 책을 담아왔다.욕심이 있다고 책을 깊고 즐겁게 읽는 것도 아닌데, 왜 도서관에 가서 책만 보면 가득 담아서 구불구불한 그 길 창밖을 바라보며 오고 싶을까. 빌리고 싶던 책들을 집어들고 돌아서다 문득 일전의 "원 마일 클로저"가 생각이 났다.손쉽게 책을 찾고선 띄엄띄엄 앉아서 책과의 시간에 빠져드는 사람들 사이에 자리잡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원 마일 클로저"는 제임스 후퍼의 온화하게 열정적인 삶이 닮긴 에세이이다. 쉽게 읽힌 책이지만, 깊게 들어오고 오래 머무른다. 이 책에서 제임스가 쏟아낸 이야기들은 평범하고도 특별하다. 제임스의 모험은 자전거에서 시작하였다. 고등학생 시절, 호기심에 들어간 학교 사이클링 클럽에서 그가 얻은 것은 자전거 실력만이 아니라 ..

독서노트 2018.01.30

2008.12.18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 ​(사진은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의 포스터) 우리 둘 중의 하나가 장난을 치면 다른 사람은 고통을 받았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두 사람 다 상대방이랑 함께 있으면 좋다고 말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 아니에요? -그런데 왜 지금 그 얘기를 하느냐니까? 그건 말이에요, 이따금 당신이 우리가 얼마나 큰 행운을 누리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에요. 행복이 찾아왔었는데, 나는 삶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것이 그냥 지나가도록 내버려두었어. 너무나 간단했는데, 손을 내밀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그 다음 일은 어떻게든 해결될 수 있는 거였는데 말이야. 행복하기만 하다면, 나머지 일은 어떻게든 해결되기 마련 아니겠니? 2005년 11월, 친구의 생일에 읽어본 적도 없는 이 책을..

독서노트 2017.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