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2019. 05. 22 오후의 기타

merciel_ 2019. 6. 6. 00:00

나의 정부, 나의 기타 

 

그리운 악마 - 이수익

 

숨겨 둔 정부 하나 

있으면 좋겠다.

몰래 나 홀로 찾아드는

외진 골목길 끝, 그 집

불 밝은 창문

그리고 우리 둘 사이

숨 막히는 암호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아무도 눈치 못 챌 

비밀 사랑,

둘만이 나눠 마시는 죄의 달디단

축배 끝에

싱그러운 젊은 심장의 피가 뛴다면!

 

찾아가는 발길의 고통스런 기쁨이

만나면 곧 헤어져야 할 아픔으로

끝내 우리

침묵해야 할지라도,

 

숨겨 둔 정부 하나 

있으면 좋겠다.

머언 기다림이 하루 종일 전류처럼 흘러

끝없이 나를 충전시키는 여자,

그 

악마 같은 여자.

 

 

시인이 대놓고 불륜을 조장할 리는 없다. 그러면 이 시의 '정부'가 은유하는 상징은 뭘까.

"마음 설레게 하고 심장의 피를 뛰게 하는 이 세상의 온갖 매혹적 존재들"이라고 평론가들은 해석한다.

낭만적 일탈을 꿈꾸는 욕망은 따분한 일상을 맛깔나게 하는 향신료와 같다.

진부한 일상적 삶에서 일탈하고 싶은 욕망, 신선한 삶의 에너지를 향한 인간의 갈망을

시인은 불륜의 사랑에 빗댄 셈이다. 

이 시인은 "내가 삶과 사물을 바라보는 마음에는 그 존재의 속성 중에 뜨겁고 치열하고 극단적인 면을 탐색하여

이를 형상화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운 악마> 시 역시 뜨겁고 치열하고 극단적인 면이 엿보인다.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을 뜨겁다. 그렇지만 그것은 세속적 불륜에 대한 칭송이 아니라, 삶을 더욱 뜨겁게 만들고

가슴 설레게 하는 매혹적 존재들로 인해 고양된 정신과 영혼에 대한 위로의 의미가 아닐까. 

 

<오후의 기타, 김종구> 

 

내가 기타를 잡아본 지 꼭 이십년이 되었다.

이십년 전에도 지금도 대단한 열정은 없었고, 없는 듯 하다. 열정과 욕심은 조금은 별개인 것 같으니까. 

실력도 게으른 만큼 다를 것이 없다. 

다만 달아오르듯 설레는 마음은 변함없는데, 그럴 때마다 내 삶에서 음악과 기타가 의미하고 내게 가져다 주는 것은

가장 넓고도 끝없는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