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2019. 07. 10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merciel_ 2019. 8. 9. 12:08

그리하여 우리는 치명적인 쾌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피드'를 쾌락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처럼 추악한 시대에는 위험, 뜻밖의 사건, 무분별함이 숫자, 적자,
혹은 계산에 직면하여 끊임없이 거부당한다. 이 시대는 비참한 시대이다.
사람의 영혼에 깃든 계산할 수 없는 가치가 아니라, 사람의 몸뚱아리에 매겨진 가치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으니 말이다.

<스피드>

 

그 두발 짐승들은 그토록 사랑했던 생트로페에 대해 지금은 아주 나쁘게 말한다.
혹은 마술사가 모자에서 토끼들을 끄집어내듯 그댈의 기억으로부터 '그들의 것'이었던
청춘의 찬란하고 향수 어린 추억을 끄집어낸다. 그들은 그 추억을 그들 뒤 세대의 추억과 비교할 때
눈에 띄게 색다르고 우월하다고 평가한다.

 

어쨌든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태양이 거기에, 내 손바닥 안에 있다.
나는 기계적으로 태양을 향해 손바닥을 내민다. 그러나 손을 다시 쥐지는 않는다.
시간과 사랑을 붙잡으려고 애쓰지 말아야 하듯이, 태양도 인생도 붙잡으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나는 웃고 잊어버리는 사람들, 어느 곳이든 다른 곳, 그러나 이곳을 닮은 다른 곳,
혹은 이곳을 닮으려고 애쓰는 다른 곳, 그러나 결단코 그것에 성공하지 못할 다른 곳을 향해
다시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로 내려간다.

<생트로페>

 

지금은 예전의 절반 정도만 높이 평가하지만, 나는 여러해 동안 그 책들의 의존했다.
내 가장 생생하고 완전한 추억은 그 책들에 연결되어 있다.
후각, 청각, 시각, 심지어 촉각마저도 그 순간들 속에서 내 지성만큼이나 크고 뚜렷한 영향을 받았다.
반면 마음속의 추억은 나에게 단 한가지 의미만을 남겨주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한눈에 반한 경험, 첫사랑, 첫 번째 이별, 그때 내렸던 비 냄새와 커피냄새가
극단적으로, 다른 것을 압도할 정도로 증폭되었던 것이다.
첫 키스 때 비가 내렸던가? 그가 눈을 내리깔고 나에게 작별을 고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지나치게 나 자신으로 강렬하게 살았던 것이다. 그런 만큼 다른 누군가가 나 대신 살게 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말해, 나 자신의 존재가 완벽하게 느껴지도록, 다른 누군가가 살아가는 모습을 책을 통해 읽을 필요가 있었다.

<독서>

 

경탄이란 것이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어버린 나머지 사람들이 그 우스꽝스러움에
별다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어요.
아마 지금은 나 자신도 그 우스꽝스러움을 개의치않을 만큼 꽤나 나이가 들었거나 혹은 다시 젊어졌겠죠.
당신은 언제나 멋지게 우스꽝스러움 따위는 무시해버렸지만요.

 

나는 당신이 이 편지를 6월 21일에 받기를 원했어요.
6월 21일은 프랑스에 소중한 인물들이 태어난 상서로운 날이죠. 쉽게 설명되지 않는 일이지만,
장기간의 간격을 두고 당신, 나, 그리고 좀 더 최근에는 플라티니가 태어난 날이니까요.
이 세명의 탁월한 사람들은 승리에 휩쓸리기도 했고,
혹은 야만스럽게 짓밟히기도 했죠(고맙게도 당신과 나는 비유적 의미로).
그러나 여름은 짧고, 흥분을 가져다주고, 우여곡절이 많고, 곧 퇴색해버려요.
결국 나는 생일축하 시를 포기했어요.
이제 내가 당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그리고 이 센티멘털한 칭호를 정당화하는 이유를 말해야겠어요.

 

아직껏 내가경탄하는 작가들이 많이 있지만, 당신은 정말이지 내가 계속해서 경탄하는 유일한 작가예요.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영리하고 엄숙한 나이에, 정확한 목표가 없었으므로 타협도 없었던 나이에
당신이 나에게 약속했던 모든 것을 당신은 지켰어요.
...
요컨대 당신은 사랑했고, 썼고, 나누었어요. 당신은 당신이 주어야 할 모든 것을,
중요한 것을 사람들에게 줬어요.

 

당신은 판단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정의를 큰 소리로 비난하지 않았고,
칭송받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영광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당신 자신이 관대함 그 자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관대함을 환기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끊임없이 일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주었어요.
당신은 검소하게, 금기 없이, 글쓰기의 파티 말고는 떠들썩한 파티 없이 살았어요.
사치 없이 살고, 사랑을 하고, 사랑을 주고, 매혹하고, 매혹을 받고,
모든 분야에서, 속도와 지성과 광휘에서 당신의 친구들을 추월하고,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눈치채지 않도록
끊임없이 그들을 향해 돌아선 우리 시대의 유일하게 정의로운 사람,
유일하게 영예로운 사람, 유일하게 관대한 사람이었어요.
당신은 무관심해지는 것 보다는 이용당하고 놀림당하는 것을 더 좋아했고,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보다는 낙담하는 것을 더 좋아했어요.
모범이 되기를 결코 원치 않았던 한 인간에게는 얼마나 모범적인 삶인가요!

 

우리의 관계에서 그가 좋아했던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공통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절대 이야기하지 않은 점이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마치 기차역의 플랫폼에 서 있는 여행자처럼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지..."
나는 그가 그립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싶었고, 그는 내 정신을 사로잡았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평생 동안 너무나 행복한 사람이었어요. 정말 행복했지.
나는 행복한 남자였고, 행복한 저명인사였소. 그런 만큼 갑자기 역할을 바꿀 생각은 없었소.
나는 습관에 의해 계속 행복해했소."
사르트르가 이 말을 했을 때, 나는 그가 말하지 않은 것까지 듣고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 나와 가까운 여자들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가슴 아프게 만들지 않기 위해'.
특히 자정에, 혹은 우리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왔을 때,
혹은 오후에 우리가 차를 마실 때 그에게 전화를 걸어왔던 그 여자들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그 여자들이 너무 요구가 많고, 너무 소유욕이 강하고, 앞을 보지 못하는 불구의 남자이며
글 쓰는 직업까지 박탈당한 그 남자에게 너무 의존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 여자들은 그런 비상식적인 태도를 통해 그에게 삶을, 그때까지의 그의 삶을,
남자로서의 삶을, 바람둥이이고 기만적인 동시에 동정심 많고 관대했던 그의 삶을 회복시켜주었으리라.

 

나는 그의 죽음에서 결코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때때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 답을 나에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 벼락 맞은 남자밖에 없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었다.
사르트르는 1905년 6월 21일에 태어났고, 나는 1935년 6월 21일에 태어났다.
이 지구에서 그 없이 삼십 년을 더 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

<장 폴 사르트르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

 

그녀의 소설보다도 묵직하게 다가온 그녀의 에세이.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원제와 사뭇 다른 제목이다. meilleur가 가진 뜻은 <더 좋은, 가장 좋은>인데
고통과 환희의 순간마저도 최고의 순간이라고 느낄 수 있는 삶이라면
꽤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많은 수양이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ㅎㅎ

-Avec mon meilleur souvenir, Françoise Sagan,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