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19

2009.01.28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나에게는 꿈인 것이 아줌마에게는 악몽이 되었던 것이다. 로자 아줌마는 꿈이 오래되면 악몽으로 변한다고 했다. 나는 너무 행복해서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손 닿는 곳에 있을 때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 하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왜 매일 웃고 있어요? - 나에게 좋은 기억력을 주신 하느님께 매일 감사하려고 그러지, 모모야.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나는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며 어느 집 대문 아래 앉아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늙었으므로 걸음걸이가 너무 느렸다. "그 때 결혼했으면 오십 년 동안 서로 미워하게 됐을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 결혼하면 좋아하게만 될 거예요. 서..

독서노트 2017.09.15

2004.05.21 뭉크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걸 참을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라디오를 밤낮으로 틀어놓아 목소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낯선 군중 속에 홀로 있을 때가 가장 편안했으므로, 그는 기차역과 역 구내식당을 사랑했다. 미지의 것에 이끌림을 느꼈기에 여행도 역시 좋아했다. - 그의 극도의 수줍음은 애정을 향한 강한 갈망과 지식에의 크나큰 욕구에 대한 방어막 구실을 했다. 뛰어내리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사람을 현기증이 보호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기증이 있는 사람은 가파른 절벽을 절대로 오르지 못한다. 그는 위험을 감지하는데, 절벽을 오르는 것이 그에게 위험한 이유는 뛰어내리고 싶은 욕구로 조바심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독서노트 2017.09.14

2005.10.22 「상관관계」 자서전에서, 카사노바

상관 관계 인간의 품성과 행위를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건 유익하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그건, 예컨대 어떤 사람이 책을 읽기 전에 무슨 책을 읽을지 목록을 검색하는 게 유익한 것만큼만 유익할 뿐이다. 도덕 교육도 마찬가지다. 설교를 하고 유익한 이야기를 들려줘봐야 그것으로는 결코 세상을 제대로 알게 하지 못한다. 아무리 집중해서 듣고 또 몰두해서 익힌다 하더라도, 이것을 실제 현실에 적용하려 할 때, 과연 예견한 대로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것들을 모두 믿고 몸을 맡겼다가는 후회라는 고통스러운 벌을 받는다. 이 과정에 얻는 작은 소득이 있다면, 우리도 어느덧 남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현명해졌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르치는 사람들이 해내는 것이라고 해봐야 우리가 한 것보다 더 낫지 ..

독서노트 2017.09.14

2005.04.04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변덕과 일생에 걸친 열정이 유일하게 다른 건 변덕쪽이 더 오래간다는 걸세." "한눈팔지 않는 사람들은 사랑의 사소한 측면만 알지. 한눈파는 사람들이야말로 사랑의 비극을 알 수 있다네." "인생을 살면 살수록 나는 우리의 아버지들에게 충분히 좋았던 것들이 우리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더욱 예민하게 느끼네. 정치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술에서도 '할아버지들은 언제나 틀린 법'이더군." "자식은 우선 부모를 사랑한다. 그러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식은 부모를 판단한다. 그리고 때로 자식은 부모를 용서하는 법이다. 오스카 와일드, 에서.

독서노트 2017.09.14

2004.09.24 갇힌 새의 운명: 반 고흐

갇힌 새의 운명 ...(중략) 내 안에 무엇인가 있다. 그것이 도대체 무얼까? 그런 사람은 본의 아니게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경우다. 원한다면 나를 그 가운데 하나로 봐도 좋다. 새장에 갇힌 새는 봄이 오면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어딘가에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단지 실행할 수가 없을 뿐이다. 그게 뭘까? 잘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는 알고 있어서 혼자 중얼거린다. '다른 새들은 둥지를 틀고, 알을 까고, 새끼를 키운다.' 그리고는 자기 머리를 새장 창살에 찧어댄다. 그래도 새장 문은 열리지 않고, 새는 고통으로 미쳐간다. '저런 쓸모 없는 놈같으니라고.' 지나가는 다른 새가 말한다. 얼마나 게으르냐고. 그러나 갇힌 새는 죽..

독서노트 2017.09.14

2004.06.22 테오에게, 반 고흐

​ 테오에게. 아직 한겨울이니 제발 조용히 작업할 수 있게 내 버려다오. 그 결과가 미친사람이 그린 그림에 불과해도,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제 참을 수 없는 환각도 사라졌고, 악몽을 꾸는 일밖에 없다. 칼륨정제를 복용한 덕분이 아닐까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 바로 나를 정신 병원에 가둬 버리든지 아니면 온힘을 다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다오. 내가 잘못했다면 나를 가둔다해도 반대하지 않겠다. 그냥 그림을 그리게 내버려둔다면 약속한 주의사항을 모두 지키도록 하마.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약속해온 그림을 너에게 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나중에는 하나의 연작으로 보여야 할 그림이 여기저기 흩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해도 너 하나만이라도 내가 원..

독서노트 2017.09.14

2004.06.19 라보엠, 앙리 뮈르제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예술계에 발을 들이는 자들은 예술 그 자체가 존재의 수단이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보헤미안의 길을 필연적으로 걷게 된다. 예술계에서 가장 빛나는 찬사를 받았던 근대 예술가들은 대부분 보헤미안들이었다. 이들은 더없이 찬란했던 영광스러운 시기를 맞이하며 종종 자신들의 젊은 시절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물론 그 중에는 그 시절을 애석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 예술가들은 초록빛 언덕을 오르던 젊은 시절, 스무 살 남짓되는 나이에는 용기라는 재산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았음을 기억할 것이다. 그 용기라는 것은 바로 젊은이들의 덕목이었고 희망이라는 것은 가난한 이들이 꿈꾸는 유일한 재산이었다. 보헤미안이 된다는 것은 바로 진정한 예술가가되기 위한 수련의 길과도 같은 것이며,..

독서노트 2017.09.14

2006. 08.06

그녀의 치마가 펄럭였을 때 세상은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돌이킬 수 없는 폐허처럼,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끝까지 갔다. 그곳에 검붉은 아가리를 쩍 벌린 단애가 오롯이 자리함을, 발끝이 흔들리는 아슬아슬함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허방을 향해 한 손을 뻗을 때, 온몸과 함께 생애까지도 기우뚱거리는 순간의 아찔한 쾌감을 포기할 수 없었다. 깊은 곳으로부터 절로 몸이 젖고 영혼마저도 울울함을 떨치고 동실 떠올랐다. 어찌 이 가벼운 비상의 충동을 멈출 수 있겠는가. 부박한 생이여, 손아귀 가득 움켜잡은 치맛자락을 놓아라. 뿌리치는 비단 천에 미끄러져 더욱 붉어진 알몸뚱이로 그녀는 간다. 끝까지 오직 아득한 끝만을 주시한 채로. 김별아/미실 백팩에 있는 동안 슬삼에게 받은 미실을 읽었다. 책이고 나들이고..

독서노트 2017.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