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2009.01.28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merciel_ 2017. 9. 15. 01:29

나에게는 꿈인 것이 아줌마에게는 악몽이 되었던 것이다. 로자 아줌마는 꿈이 오래되면 악몽으로 변한다고 했다.


나는 너무 행복해서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손 닿는 곳에 있을 때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 하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왜 매일 웃고 있어요?
- 나에게 좋은 기억력을 주신 하느님께 매일 감사하려고 그러지, 모모야.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나는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며 어느 집 대문 아래 앉아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늙었으므로 걸음걸이가 너무 느렸다.


"그 때 결혼했으면 오십 년 동안 서로 미워하게 됐을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 결혼하면 좋아하게만 될 거예요. 서로 미워하고 할 시간이
없잖아요."


신 얘기는 이제 지겨웠다. 신은 언제나 남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니까.



La vie devant soi, Emile Ajar, 1975

서점에서 책들 사이에서 기웃거리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책을 보았다. 로맹 가리 라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작가의 책에 강렬히 이끌려 이 책을 마음에 넣고 읽었다. 이후 읽게 된 "자기 앞의 생"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낸 책이며, 로맹 가리는 이 두 이름으로 한 작가에게 두 번은 수여하지 않는 공쿠르 상을 두 번 수상하게 된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와 나이를 초월한 만남과 사랑,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관계는 보다 오랜 시간을 존재하였던 아줌마의 죽음에도 한결같았다.

"자기 앞의 생"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버스길-402번을 타고 구불구불 올라간 곳에 위치한- 중간에 위치한 남산도서관과 용산도서관에서 한창 시간을 보낼 때 읽었던 책이었다. 비 오는 날 움직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나는 쾌청한 날이면 한적한 시간에 한가한 버스를 타고 도서관으로 향하곤 했다. 책을 빌려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안에서 빌린 책 중 가장 읽고 싶은 책부터 읽었다. 책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에어콘도 히터도 필요없는 청명한 날씨에 살짝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반쯤은 졸고, 버스 창 너머의 익숙하지만 질리지 않던 풍경을 자꾸만 바라볼 수 밖에 없어서 내릴 때에도 넘어간 페이지는 얼마 되지 않고는 했다.

내 마음을 따르고자 퇴사를 앞두던 어느 추운 겨울날, 알 수 없는 끌림에 집어들어 읽었던 이 책을 또다른 추운 날 들른 중고서점에서 발견하였다. 정반대의 더운 여름날 태국으로 떠날 때에 챙겨갔던 이 책은 나를 따라서 또 다른 한여름의 호주로 왔었고, 그 곳에서 만난 누군가에게 빌려주어 돌아오지 못 하였다. 이 책은 어디까지 여행했고 지금은 어디에서 누구와 있을까. 수많은 계절을 지나 내 삶의 무게는 얼마나 변하였을까. 함께 계절을 보냈던 인연들은 나를 기억할까. 상처가 많아야만 성장하는 것은 아닐테다. 그럼에도 서로의 행복과 상처를 공유할 수 있는 초월한 존재를 만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참 애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