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2004.09.24 갇힌 새의 운명: 반 고흐

merciel_ 2017. 9. 14. 12:20

갇힌 새의 운명


...(중략) 내 안에 무엇인가 있다. 그것이 도대체 무얼까? 그런 사람은 본의 아니게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경우다. 원한다면 나를 그 가운데 하나로 봐도 좋다.

새장에 갇힌 새는 봄이 오면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어딘가에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단지 실행할 수가 없을 뿐이다. 그게 뭘까? 잘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는 알고 있어서 혼자 중얼거린다. '다른 새들은 둥지를 틀고, 알을 까고, 새끼를 키운다.' 그리고는 자기 머리를 새장 창살에 찧어댄다. 그래도 새장 문은 열리지 않고, 새는 고통으로 미쳐간다. '저런 쓸모 없는 놈같으니라고.' 지나가는 다른 새가 말한다. 얼마나 게으르냐고. 그러나 갇힌 새는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잘 하고 있고 햇빛을 받을 때면 꽤 즐거워 보인다.

철새가 이동하는 계절이 오면 우울증이 그를 덮친다.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그를 새장에 가둔 아이들이 말한다. 벼락이 떨어질 듯이 어두운 하늘을 내다보는 그에게 자기 운명에 반발하는 외침이 들려온다. 나는 갇혀 있다! 내가 이렇게 갇혀 있는데 당신들은 나에게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한다. 바보 같은 사람들! 필요한 건 이곳에 다 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새처럼 살 수 있는 자유가 없지 않나!

본의 아니게 쓸모 없는 사람들이란 바로 새장에 갇힌 새와 비슷하다. 그들은 종종 정체를 알 수 없는 끔찍한, 정말이지 끔찍한 새장에 갇혀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해방은 뒤늦게야 오는 법이다. 그동안 당연하게든 부당하게든 손상된 명성, 가난, 불우한 환경, 역경 등이 그를 죄수로 만든다. 그를 막고, 감금하고, 매장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지적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떻게 표현하기 어려운 창살, 울타리, 벽 등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환상이고 상상에 불과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묻곤 한다. 신이여, 이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요? 언제까지 이래야 합니까? 영원히?
이 감옥을 없애는 게 뭔지 아니? 깊고 참된 사랑이다.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최상이 가치이며, 그 마술적 힘이 감옥 문을 열어준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과 같다.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곳에서 인생도 다시 태어난다. 이 감옥이란 편견, 오해, 치명적인 무지, 의심, 거짓 겸손 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중략)


테오에게 보낸 고흐의 편지 중.
1880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