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ssie Life /Part 2_Uni

2012.03 유학을 준비하며

merciel_ 2017. 9. 16. 02:49

나는 2006년에 호주로 워킹을 떠났었다. 참 잘 먹고 잘 놀고 잘 지냈었지만, 호주에서 어떻게든 정착하려고 하는 사람들과 호주가 그리워서 다시 오는 사람들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호주를 떠날 날이 가까워졌을 때에는 비지니스 비자 제의도 받았고, 호주 갈 때 그렇게 반대하던 엄빠도 너가 좋다면 더 지내다 와도 좋다고 했었다. 그러나 나는 호주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다시 올 수도 있겠지만 향후 10년 안에는 전혀 계획에 없을, 이제 지난 이야기로 담아둘 장소. 하지만 4년쯤 지나서 호주에 다시 와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은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Never say "never"」라고 했던가. 살아가며 배우고는 있는 것 같으니 다행이다.


여튼, 그래서 나는 영주권을 받고자 했다. 독립기술이민으로 영주권을 받기에 유리하기로 유명한 학과는 보통 회계학, 간호학이다. 사실 학교에는 혼자 지원해보려 했었으나, 길가다 유학원을 보고 정보나 얻으려 들어가 봤다가 그 자리에서 비자 연장을 위한 비지니스 스쿨 등록과 대학원 지원을 하게 되었다. 내 인성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므로 간호학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고, 회계학과 정보가 궁금했었다. 그 순간에도 나의 자아는 충돌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느냐, 영주권의 가능성이 높은 공부를 하느냐. 배우고 싶었던 것은 많았다. 나는 욕심쟁이였고 나는 남들보다 느리고 한눈을 자주 팔았었다. 건축, 조경, 선박정비, 항공정비, IT, 베이킹, 심리학, 통번역. 써 놓고 봐도 민망할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전공들이다. 나는 그만큼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하기 싫은 것도 적었다. 나의 넓은 스트라이크존이 여기서도 문제였다. 맘먹으면 살면서 다 해 볼 수 있을 수도 있는 것들이지만, 그냥 대충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 쯤은 제대로 깊게 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나. 유학원에 들르기 전 이미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건축가, 조경사, 심리학자는 영주권 신청이 가능한 직군이었다. 다만 기간이 문제였는데, 서른이라는 내 나이도 걱정스러웠지만 비용도 아찔했기에 탈락. IT는 향후 취업 전망이 불투명하며, 선박 및 항공정비의 경우 수학이 자신없다면 어렵고 취업문이 현저히 낮아졌으며, 베이킹은 타고난 부분이 없다면 어려울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멍충한 선택도 그런 상똥멍충한 선택도 없었지만, 그래서 일단 회계를 선택했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민은 했다. 이것이 내가 직업을 갖기 전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지 않나. 멜번에서 미술을 전공했던 친구와 이야기를 해 봤다. 하고 싶은 공부는 했지만 모든 것이 붕 떠 버렸던 친구는 영주권을 받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그래, 역시 회계인가. 근데 나 수학 고잔데. 그것도 고자대회하면 우승도 할 수 있을만큼 특출난 고잔데. 그런데 수학은 큰 관계가 없단다. 하다보면 익숙해지는 숫자싸움이라고 한다. 뭐 그래, 가자. 회계의 나라로! 빡세게 공부하고 남는 시간마다 하고 싶은 거 하면 될 거 아니겠어? 


정말 아니었다. 엄청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보건대 호주에서 유학하기는 내가 했던 선택 중 가장 괜찮은 선택이기도 했지만 가장 나쁜 선택이기도 했다. 이유야 여러가지인데, 가장 큰 이유는 분명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제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남 이야기 듣고 행동했다고. 하필 살면서 가장 깊고 오래 고민하고 조언들도 들어보고 선택했던 것이 이런 그림으로 그려졌으니 웃길 뿐이다. 전공이 잘 맞지 않아 백팔번뇌를 수천번 함에도 불구하고 목표인 영주권을 위해서 애를 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내 고자력과 무력감이 무척 높았다. 나는 또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행복한 삶으로 나를 데려다 준다는 것을. 회계학은 나쁘지 않은 적당한 선택이었고 아직도 내게 기회를 주고 있기는 하다. 한 번 혹은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나면 결국 언젠가는 행복에 이를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짧고, 예상치 못한 이벤트는 일어나게 마련이며, 나의 변덕이 기승을 부릴 여지도 많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에 돌아와 여전히 이따금 호주를 꿈꾸는 나의 호주이민은 아직 진행형인 것 같다. 다음에는 학교 선택과정과 영어 시험 준비, 최종적으로 다녔던 학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내가 다녔던 호주 New South Wales주의 North Ryde에 위치한 Macquarie University.

http://www.mq.edu.au

(졸업식 날에서야 우리학교에서 와이파이를 개발했었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