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는 삶

merciel_ 2017. 9. 13. 01:16

어느새 유월이다.
2017년이라는 글자가 아직도 낯선데
이 해의 반이 지나가려 한다.
올해가 시작하자마자 올해도 다 갔구나
라고 내뱉긴 했지만 이거 뭐,
정말 순식간이다.
아, 다시 못 올 2017년이건만
흥청망청 써 버리는 데는 최고로구나.
선택을 해야했다.
일상이 선택이다만-
버스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커피는 라떼를 마셔야할까
아메리카노가 좋을까?
내가 쏟아버린 시간이 흘러가
말라버린 것을 본다.
과거에 사는 사람이 되고싶지는 않은데,
삶이란 스스로를 옛 기억에 집어넣곤 한다.
그리운 것이 많아 아픈 시간들.
용감했기에 지금이 두려운 시간들.

조금 더 어렸을 때에는
선택이라는 것에 별 생각이 없었다.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무조건
해야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적어도 언젠가의 나는
조금은 더 열정적이고 보다
더 공격적이긴 했던 것 같다.
내가 삶에 무료해짐에 따라
나는 후회의 나이테를 둘러간다.
꽤나 이기적이다만 같잖은 한 가닥의
양심때문에 정신을 온전히 놓지는
못하는 오늘의 나.


아빠가 아프다.
좀 더 나중이라 생각했는데, 아니,
나중이라고 해도 이런건 아니었다.
세상 일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지만, 이건 좀 아닌데 말이다.
언젠가부터 선택을 할 때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끼어들게 되었다.
그것이 부모였다.
엄마든 아빠든
선택을 해야할 때가 있었을 때,
꽤나 빈번하게 내가 있었을 거다.
나는 "나중에"라는 말을 싫어했다.
지금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나중이 있을 지 없을 지 어떻게 알고?
그래서 나는 좀 더 무모하고,
멋지기도 했고, 어리석기도 했다.
부메랑처럼 나중에 올 것들은
엄마아빠를 거쳐서 내게 전달이 되었다.
서서히 그리고 갑자기.

아빠에게도 나중은 있었으리라.
나를 생각해서 나중으로 미뤘던 것이
어찌 없었으리.
내가 사랑해 본 적 없던 아빠가,
당신의 삶이 저물어갈 때 즈음에야
딸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는 아빠가.

바라건대, 내가 게을렀던 만큼
미룰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미루고 싶다.
바라건대, 내가 무모했으나
평온했던 것 만큼 평안한 일상이
이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