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관하여

merciel_ 2017. 9. 13. 01:11

#1
한 사람이 살아가며 바라는 행복의 모양은 제각각이다.
누군가에게는 달콤하고 맛있는 초컬릿이
누군가에는 알러지를 유발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기호가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을 요상한 취급할 수 있을까.

예를 초컬릿으로 들었으니 초코렛을 파자.
초컬릿의 모양이나 맛도 제각각이라,
아무리 초컬릿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아쉬운 마음으로 먹는 초컬릿이 있고,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찰리와 초컬릿 공장에서 나온 넓고 큰 판 모양의 초컬릿도
탐스런 짙은 갈색이 아닌 보드랍게 흰 초컬릿도
새콤한 딸기가 박힌 초컬릿도
초컬릿이 아닌 것은 아니다.
보편적인 초컬릿이 아니라해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그 초컬릿을 훔친 것이 아닌 한.


#2
한 사람이 살아가며 「행복」을 떠올렸을 때,
그 행복의 느낌은 언제나
"발끝까지 떨리고 머리가 핑 돌 정도로 아찔하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판단할 수 없는 느낌과 혼란스러운 느낌과
의지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 등등
동일하지 않은 느낌의 충돌 속에서 평온한 행복은 요원하기도 하다.
그리고 문득 생각하게 된다.
"나는 지금 행복한 것인가?"
(누구는 "배부른 고민이군!"이라고 하려나.)

상상력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갈 때에는
그래프 안에서 정점을 찍는 순간 맛본 행복에
어쩌면 행복한 순간이 두려울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행복하지만 어제 느낀 행복이 더 컸기에
불행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이 행복의 정점일 지도 모를 것 같은 느낌에.
차선의 행복이란 때론 타협으로 얻는 감정이라
외부요인을 제거하고 나서도 온전하지 못하다.
타인과의 비교로도 불행할 수 있지만
어제의 나 혹은 미래의 나와의 비교로도 불행할 수 있으니.

이전에는 내일 행복하기 위해서 오늘 불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온전히 행복하지 못했다면, 지금은
오늘의 고비가 내일 나를 행복하게 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하루를 버틸 수도 있음을 느낀다.
무수히 많은 점 위의 그 둘의 위치가 어디인지,
그리고 어떤 위치의 점에서 멈춰서야 하는 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날 수록
행동할 수 없는 것이 늘어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날 수록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이 늘어난다.


#3
한 사람이 살아가며 상상할 수 있는 행복의 크기는 다양하다.
당장 먹고 입을 것이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 있지만
수많은 재화와 사랑을 가지고서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스스로의 마음에 솔직할수록 행복의 크기는
때론 줄어들기도, 늘어나기도 하는데
솔직하기가 나에겐 쉽지가 않다.
아니, 마음은 솔직하지만 행동이 솔직하지 못한 것일까?

나는 행복을 위하여 솔직해서 좋았던 적이 별로 없었다.
아니, 행복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를 보이는 데에 있어서도.
나의 솔직함이 누군가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해도,
나의 솔직함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유치한 투쟁을 해야하기도 했고
그러한 솔직함이 때론 누군가에게 불편함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대로 나 자신이었기에.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솔직하지 않은 것이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을 뿐이다.
솔직함이 주는 오해와 색안경이 되돌아왔기에
방어기제가 튀어나오기 시작하였고,
나는 솔직해야할 순간에 가장 거짓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뒤돌아보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는다.
중요한 순간 솔직했기에 행복할 수도 있었지만
솔직하지 못 하였기에 손 안에 들어온 행복을 뿌리치기도 했다.
행복의 크기가 왔다갔다 하고,
나는 지금이 어떠한 순간인지를 모르겠을 때가 많다.
열심히 고민한다고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열심히 행동한다고해서 괜찮은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그 순간 첫 번째로 스치는 마음을 따르면
행복의 크기가 가장 클 테니 돌아보지 말자고 해도
나는 그 간단한, 앞만 보고 하나만 하는 것이 어렵다.



#_
최근,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길에 엎어지고 구르는 친구들을 만난다.
각자의 길에서 다치고 구르지만 결국 같은 곳에서 만난다.
바로 어제조차, 행복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던 친구의 목소리를,
휴대폰 너머 울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좋은 날 사람 많은 길에서 듣고는 함께 찔끔 울 수 밖에 없었다.
행복에 질이 어디 있고 양이 어디 있겠냐마는
죽을 만큼 노력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너무 슬플 것 같다.
행여나 노력이 부족한 건 아닐까,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못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필요 이상의 생각으로 결국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0
어제는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던 길에서 눈물을 쏟았던 친구를 만났지만
오늘은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따라서 꿈꾸고 맞서며 행복의 길을 걷는 친구를 만났다.
가장 괴롭다고 생각했던 시기에 행복의 문을 열 수 있게 용기를 주었고
나 스스로에게도 주변에게도 조금 더 맑게 솔직해질 수 있게 해 주었던 그녀는
삶의 길에 고운 조약돌로 행복을 흐드러지게 내려놓고 있었다.

나 또한 내가 수놓았고 떨어뜨렸던 행복의 조약돌을 돌아보기보다 앞으로 나아가기를.
방랑아닌 방황을 하고 있고 그것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고, 보다 솔직해지고 있고, 조금 더 용기를 내고, 의지를 가질 수 있기를.
내 삶에 들어와 준 그녀들과 모든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도 새롭게 스며들어올 사람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