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merciel_ 2018. 8. 9. 03:43

오랜만에 들른 부모님 집에는 부모님이 없다.

제법 괜찮은 나의 기억에 의하면 우리는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의 여행을 함께 했고,

오롯이 두 분이 여행한 것도 신혼여행이 전부일 터. 

이번 여행도 친구분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지.

그리고 나는 지금 반쯤 여행온 기분이다.

언젠가 엄마는 아쉬워했다.

내가 좀 더 어릴 때 자주 같이 이곳 저곳을 다니지 못했던, 아니, 않았던 것을.

아빠는 아무말 하지 않았지만, 엄마와 같은 생각이란 것을 모를 수 없었다.


가끔은 생각한다. 

어딘가로 숨어버릴까.

풀 보고 물 보고 하늘 보면서 살게.

그리운 것이 많아질수록 나이가 들었음을 알고,

그리운 것이 많아질수록 아직 젊음을 안다. 

겪어보지 못한 것들을 익숙하게 여기고

가 보지 못한 곳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나는 아직 집을 찾지 못해서일까?

집이 너무 많아서일까?


한동안 매일같이 다녔고, 그래서 익숙하고, 에너지가 넘쳤던 길은

이제 더는 같은 느낌이 아니고, 흔적만 남았다.

<자기 앞의 생> 에서 시간은 가장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천천히 흐른다 하던데,

나는 왜 쾌속선을 타고 있는 기분일까.

많은 것들이 너무나 오래된 것 같다.

그리고 길은 아직 꽤나 울퉁불퉁하다.